자본시장에 '상법 개정' 바람이 거세다.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골자로 한 '1차 상법 개정'이 단행됐고, 최대주주의 권력을 옥죄는 '더 센' 상법 개정안이 예고됐다.
재계에선 경영권 위협에 대한 우려가 빗발치지만, 큰 흐름을 막을 순 없어 보인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개정 상법 시대에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거버넌스 컨설팅 센터장은 지난 4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에 대한 재계의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주주권과 지배권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고 봤다.
안 센터장은 "재계가 해외 펀드, 연기금 등 외부 세력의 경영권 위협을 걱정하는 것을 엄살만으로 볼 순 없다"며 특히 3년 전 SM엔터테인먼트 정기주주총회에서 얼라인파트너스가 제안한 감사 후보자가 선임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기업에 적잖은 우려를 안기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사건은 소수주주가 추천한 후보자가 '3% 룰'(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한 것)을 이용해 대형 상장사의 상근감사 자리를 꿰찬 선도적인 케이스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상근감사, 사내이사인 감사위원 선임 때만 적용됐던 3% 룰이 이젠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경영진과 이사회가 느끼는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안 센터장은 "회사 내부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감사와 감사위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집중투표제마저 도입된다면 파급력은 더 커질 것"이라며 "지속 가능한 기업가치 개선을 위해선 지배권과 주주권 사이에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을 균형 있게 맞춰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2차 상법 개정'이 임박한 가운데 기업들이 취해야 할 대응 전략은 무엇일까. 안 센터장은 두 가지를 주문했다.
먼저 '문서화'다.
주주 간 이해 상충 가능성이 있는 경영상 판단을 내리거나 이사회의 중대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 논의 과정을 전부 회의록으로 남기라는 것이다.
안 센터장은 "밸류업 공시가 제도화된 것도 결국 이사회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외부 주주들의 불만이 소통 강화라는 답으로 귀결된 것"이라며 "이사회 논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의사결정에 대해 주주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전략으로는 '이사 후보 풀(pool)의 다양화'를 꼽았다.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수의 후보가 선임될 수 있도록 명단을 관리하고, 엄격한 자격 기준을 수립해 선임된 이사들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센터장은 "금융회사들은 형식적이긴 하지만 주기적으로 이사회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게 돼 있다"며 "비금융회사들 역시 이러한 이사 평가 체계를 만들어놔야 이사 재선임이나 보수 한도 안건이 반대에 부딪히거나 혹여 소송에 휘말렸을 때 주주 충실 의무를 다했다는 해명 자료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1주년을 맞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주주 소통 강화 차원에서 출발한 밸류업 공시가 주가 상승에도 기여하는 점에 주목했다.
안 센터장은 "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기업 중에서도 1차 본공시 이후 그간 이행 현황을 추가로 공시한 기업들의 주가가 더 좋았다"며 "이렇듯 주주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인 기업들의 성과가 더 좋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짚었다.
지난해 9월 도입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35.8%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 35.3%를 소폭 웃도는 수치다.
지난달 15일에는 1306.37을 찍으며 도입 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여러 한계점도 지적된다.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밸류업 지수를 공개한 2024년 9월 30일부터 리밸런싱 전날인 2025년 6월 12일까지 밸류업 지수 내에서 코스피 대비 초과 성과를 기록한 종목은 전체 105종목 중 47종목(44.8%)에 그쳤다.
그런데도 밸류업 지수가 코스피 대비 초과 성과를 기록한 것은 지수 성과가 특정 종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안 센터장은 "이외에도 우리나라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의 모델을 차용하면서 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에 초점이 쏠려 자기자본이익률(ROE)과 같이 정작 주주환원에 필요한 기업의 수익성 제고 방안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선 상법 개정뿐만 아니라 주주권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 개선, 밸류업 프로그램의 보완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따라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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