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기반 '테라·루나' 대폭락…신뢰성 중요도 인식
지급준비금 예치 필요성 확대…발행사 인가제·발행량 제한 등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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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실제로 보증할 수 있도록 담보 자산을 실제로 예치하는 '담보 의무화'가 필수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발행업체에 대한 인허가제를 도입해 자본금 요건 등을 갖춘 업체만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발행량 통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챗GPT 생성 이미지 |
가상자산이 실물자산과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새로운 화폐 혁신을 이끌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송금·결제 등 실생활 영역에서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달러 패권 강화라는 또 다른 양극화, 국가 통화 주권의 약화, 무분별한 민간 코인 확장, 감독 사각지대 속 금융 리스크 등 새로운 구조적 위기를 동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팩트>는 [스테이블 혁명] ①~④ 기획을 통해 디지털 화폐로서 스테이블코인이 갖는 잠재력과 한계를 짚고, 국내외 정책당국과 금융업계가 당면한 과제를 함께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스테이블코인과 실제 가치와의 1:1로 연동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질적으로 보증할 수 있도록 현금·국채 기반 담보 자산을 실제로 예치하는 '담보 의무화'가 필요하다. 실체가 없는 알고리즘 기반으로 연동됐던 '테라·루나 사태'와 같이 가치가 급격히 폭락하는 등 금융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발행자에 대한 인허가제를 도입해 자본금 요건을 갖추고 리스크 관리 체계를 확립한 업체에 대해서만 발행하고, 발행량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의 강력한 제재가 개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 116달러 -> 0.0003달러로 폭락…알고리즘 기반 연동 '한계' 확인
지난 2022년 5월.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가상자산 테라UST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매 코인인 루나(LUNA)가 대폭락하는 사태가 나타났다. 당시 루나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가총액 5위, 개당 10만원에 달하는 '메이저 코인'이었다. 당시 테라(UST)와 루나의 시가총액은 약 450억달러(약 50조원)였으며 2022년 4월까지만해도 테라의 가격은 116달러였다. 하지만 폭락이 시작된 이후 단 일주일 만에 가격은 0.0003달러(약 0.39원)로 떨어지며 99.9999% 가격 하락이 나타났다. 루나 시가총액이 52조7000억원에서 3조8000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약 50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한 것이다.
테라는 달러에 1:1로 페깅(연동)된다고 주장했지만, 달러 준비금을 보유하지 않고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을 취했다.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UST와 더불어 자매 코인인 루나(변동성 코인)를 서로 교환하면서 가격을 유지하는 형태였다. 문제는 실제 달러를 담보로 하지 않고 사실상 '심리적 신뢰'에 기반한 유지 구조를 마련했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테라의 가격이 1달러보다 상승해 1.02달러가 될 경우, 연동돼 있는 루나를 소각하고 1테라를 더 발행했다. 새로 발행된 1테라UST를 시장에 팔면 2센트의 차익이 생기기에 루나를 소각하고 테라를 공급하는 것이 유리해진다. 결국 테라 공급이 늘어나게 되고, 가격이 하락해 1테라가 1달러로 가격이 맞춰지게 된다.
반대로 테라 가격이 1달러보다 내려가면 테라를 소각하고 루나를 발행해 테라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안정시켰다. 테라 공급이 너무 늘어 시스템은 0.98달러의 1테라를 1달러어치의 루나로 바꿔준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1테라를 싸게 사서 루나로 바꿔 이익을 실현하기에, 테라는 소각되고 루나 발행이 늘어난다.
폭락장이 나타날 당시에는 누군가가 대량으로 테라를 시장에 던지면서 발생했다. 테라의 비중이 높아지면 가격이 1달러 미만으로 낮아지기에, 다시 1달러의 균형을 마주기 위해 루나의 발행량이 늘어난다. 루나의 가격이 하락하면 동일한 테라를 환매하기 위해 더 많은 루나를 발행해야 하며, 이로 인해 루나의 공급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가격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발생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달러와 항상 교환 가능한 쿠폰(테라UST)을 갖고 있는데, 이 쿠폰의 신뢰는 회사 주식(LUNA)을 새로 찍어내서 교환해준다는 약속에 기반해 있었고, 쿠폰을 들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환불하러 오자 회사는 주식을 미친 듯이 찍어낸 것"이라며 "결국 그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고, 쿠폰도 아무 가치가 없어지게 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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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자산 '테라·루나' 사태 핵심 인물이자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테라폼랩스 창업자 권도형 씨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경찰청에서 조사받고 나오는 모습. /뉴시스 |
◆ 지급준비금 예치 도입·발행사 인가제 추진
테라 루나 폭락 사태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한 경각심을 크게 일깨웠다.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확인했고, 규제 도입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우선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물 담보 없이 가상자산 간 교환이 이루어지는데다, 알고리즘상 '무한 발행'이 가능한 구조가 패틱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특히, 블록체인의 '탈중앙화'가 오히려 책임 회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제대로 된 감독 회피 혹은 불투명한 운영이 동반될 경우 탈중앙화를 통한 신뢰성 획득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외부 감사와 공시 시스템도 없어 투자자들이 실시간으로 리스크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실제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확산 시 가상자산 생태계와 전통 금융시스템과의 연계가 강화되면서 금융안정 및 경제 전반에 잠재적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가치 안정성, 준비자산 및 관련 인프라에 대한 신뢰성 유지 방안, 발행자 요건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확실한 담보가 필요하며, 예치된 지급준비금 등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단순히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가 아니라 국채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라면 외부 사건이나 변수가 발생했을 경우 대규모 환매 요청이 나타나는 이른바 '코인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국채의 경우 신용도는 높지만 유동성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동시다발적 환매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여지가 있다. 실제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테더(USDT)의 경우 전체 비중에서 약 75% 정도가 단기국채와 상업어음에 연동돼 있다. 테더의 미 국채 보유량은 약 1000억달러로 독일(880억달러), 멕시코(958억달러)보다 많다.
김형중 고려대 명예교수는 "예를 들어, 국채와 연동해 코인을 1000억원어치 발행한 회사가 있는데,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어떤 이유로든지 갑자기 법정화폐로 환급을 요구해 국채를 매각해 자금을 지급하려는데 (국채가) 500억원어치만 팔릴 수도 있다"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남은 금액을 찾을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고, 더욱 환매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은행 '뱅크런'과 유사한 '코인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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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 정책 제안 정리 표. /더팩트 DB |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장 지급할 수 있는 지급준비금을 일정 비율 이상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위와 같은 사례에서 1000억원어치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서 지급준비율을 100%로 설정한다면, 1000억원의 실제 달러를 보유해야 한다. 단순히 지급준비율을 100%로 설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즉시 현금화 가능한 유동자산의 비중 확보다. 위기 시 국채는 실질적인 '준비금' 역할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니어스법을 통해 법정화폐 또는 단기국채에 대한 1:1 담보 확보를 명문화했으며, 지급준비금은 신탁계좌에 보관하고 월별로 외부감사와 공시를 진행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MiCA규제안을 마련해 유로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00% 담보 자산 보유를 의무화하고 현금, 국채, 은행 예금 등 고유동성 자산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일본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개정자금결제법을 통해 은행과 신용금고 등 인가된 기관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예치금 또는 신탁계좌 내 현금으로 지급준비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사용자 요청시 1:1 교환을 무조건 보장해야 하며,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전면 금지했다.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인가제 도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화폐와 연동돼 사실상 '준화폐'의 역할을 하면서도 누구나 발행할 수 있다면 금융사고 발생이나 소비자 피해가 나타났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발행자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소비자 보호 강화, 시장 안정성 제고를 위해서라도 인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발행 총량에 대한 규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예금 대체수단으로 대중화되면, 실제 유동성(M2 등) 외에 별도의 '그림자 화폐'가 증가하게 되며, 이는 금리 정책과 유동성 조절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발행 총량을 과도하게 낮게 책정할 경우 발행 주체의 수익성이 줄어들 여지가 있어, 관계 당국과 업계 간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발행 업체가 코인 발행을 통한 '예치금 운용'으로 수익을 올리는만큼,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발행 금액을 정부가 과도하게 제한한다면 발행업체들의 이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의 균형을 위한 '유연한 총량 조절 매커니즘'이 필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총량은 일정 수준까지 자동 허용하고, 일정 기준 이상 발행 시 사전보고 또는 승인을 받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kimthin@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