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과징금 '적법' 판단…원수보험사 시장 진출 움직임
해외 재보험사 확산 위해 제도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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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회가 코리안리에 부과한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재보험 시장에서의 코리안리 독점 체제가 무너질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보험 독점을 문제 삼아 코리안리에 부과한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재보험 시장에서의 코리안리의 지배력이 하락할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당장은 시장 지위가 유지되겠지만, 신회계제도(IFRS17)와 금리 하락으로 인해 공동재보험 수요가 늘어나면서 보험사들이 코리안리와의 계약만 고집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국내 소재 해외재보험사의 재재보험 시 자산보유 의무 완화와 해외 본사의 중개 역할 허용 등의 제도적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코리안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은 2심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깨고 공정위 패소부분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공정위는 지난 2018년 12월 코리안리에게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약 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항공보험 재보험 시장의 독과점 사업자인 코리안리가 협의요율 등을 통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봤으며, 재판에서도 이 부분이 불공정 거래 행위로서의 배타조건부 거래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협의요율이 자발적 합의라 하더라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설정한 구조라면 남용 행위"라며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은 모두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코리안리는 국내원보험사들이 우리나라 재보험사와 재보험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국내우선출재제도' 등의 혜택을 누려왔고, 해당 제도가 없어진 이후에도 특약 체제로 국내 시장지배적 지위 유지했다.
1990년대 해당 제도가 없어진 뒤에도 코리안리는 기존 계약의 가입 시 의무조항 등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다. 국내 원보험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재보험 물량 전부를 가입하도록 하는 특약 조항을 두는 등의 형태다.
이번 대법 판결로 국내 재보험에 대한 법적·제도 장벽이 일부 약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반 보험사의 재보험 확대와 더불어, 해외 보험사들의 국내 재보험 시장 진출 등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최근에는 IFRS17와 지급여력비율(K-ICS)도입 이후 공동재보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공동재보험은 위험보험료 등 단순 보험위험 외저축보험료 등도 재보험사에 출재하면서 보험위험과 금리위험 등을 재보험사에 이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수보험사가 지닌 보험상품의 리스크까지도 재보험사가 분담하게 된다.
특히, 보험사들이 공동재보험을 활용할 경우 위험 규모를 줄일 수 있어 K-ICS 산출시 요구자본을 줄일 수 있게 된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금리 50bp 하락 시 생명보험 16개사는 14%p, 손해보험 10개 사는 11%p가량 K-ICS비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기평은 금리위험 익스포저 축소를 위한 공동재보험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부 원수보험사들은 자체적으로 재보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외국계 재보험사 스위스리와 3000억원 규모의 공동재보험 계약을 맺었으며, 동양생명은 RGA재보험과 지난해 6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3500억원 규모의 공동재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화재와 한화손해보험 등도 재보험 기능 강화를 위해 자체적인 재보험 부서와 인프라를 운영 중에 있으며, DB손해보험과 악사손해보험 등도 재보험 모델을 개발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 재보험료 기준 코리안리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2년 68.9%에서 2023년 59.9%, 지난해 56.5%로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는 원수보험사들이 해외 재보험사들과의 계약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공동재보험 수요가 늘고 있음에도 해외 재보험사의 진입 장벽이 여전해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이 급변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전문가들은 재보험 시장에 대한 시장 진입자들을 늘리려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연구원의 보고서 '공동재보험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공동재보험은 자산이전형과 자산유보형으로 구분되는데, 국내에서는 구조가 단순하고 비용이 낮은 자산이전형 중심으로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산이전형은 국내 소재 해외 재보험사의 경우 국내자산 보유 의무와 국경 간 거래 제한 등으로 인해 참여가 제한돼 해외 재보험사가 국내에서 영업하기 어렵다.
실제 지난 2020년 이후 거래된 총 7건의 공동재보험 계약 중 6건이 자산이전형이며 1건은 자산의 운용손익이 원수보험회사에게 귀속되는 유럽식 자산유보형이었다.
자산이전형 6건 중 3건을 코리안리가 체결하였으며 3건은 RGA가 체결했다. 국내자산 보유의무에 따라 거래 규모가 큰 계약은 대부분 코리안리가 체결하고, 100억원 수준의 소규모 계약은 RGA서울지점이 체결하는 구조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소재 해외재보험회사의 해외 본사 중개역할을 허용하면 향후 국내 소재 해외 원수보험회사의 본사에서 국내 법인의 중개 역할을 요청할 가능성 있다"면서 "국내 소재 해외재보험사의 재재보험 시 자산보유 의무 완화, 해외 본사의 중개 역할 허용, 미국식 자산유보형에 대한 법제 정비 및 유권해석 제공 등이 고려된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코리안리가 오랜 기간 시장을 독점하면서 다져온 기반이 있어 쉽사리 시장 점유율의 변동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해외 톱티어 재보험사 대비 자본적정성이 취약한데다, 제도가 개선돼 해외 재보험사의 국내 진출이 확대될 경우 독점적 지위가 깨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리안리는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항공보험 관련 부문에 대한 판단이며 다른 분야에서의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항공보험 재보험 관련 판결이 났던 것이며, 전체 코리안리 재보험 중 항공보험 비중이 그리 높지는 않다"면서 "관련 재판이 지난 2018년부터 진행돼 왔기에 혹시라도 다른 분야의 재보험에서도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자체적으로 점검 해왔고 시정을 했다"고 말했다.
국내 재보험 시장 재편과 관련해서는 해외 진출 비중을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를 지켜나가겠지만 보험 성숙도가 높기에 추가로 많은 수익이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현재 매출 비중이 국내가 6, 해외가 4 정도인데 해외 재보험 시장을 꾸준히 늘려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kimthin@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