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테슬라와 약 22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이후 일론 머스크가 '전략적'이라 언급한 테일러 공장을 중심으로 양사가 미국 텍사스주에 독자적인 반도체 공급망, 이른바 '텍사스 밸류체인' 구축을 염두에 둔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관세 부과가 예고된 상황과 맞물리면서 해당 협력의 전략적 의미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5일 산업연구원 경희권 연구위원은 "최근 미국에선 네바다, 텍사스, 플로리다 등이 주 안에서 완결에 가까운 반도체 밸류체인을 가지려 하는 기조가 있다"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삼성이 짓고 있는 테일러 공장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한 것도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테슬라와 삼성의 주요 인프라가 텍사스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머스크 CEO가 양사 간 지리적 인접성을 활용한 협력 구상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테슬라는 오스틴에 대형 생산기지인 '기가 텍사스'를 두고 있으며, 인근에는 머스크 CEO의 자택도 있다.
이 공장에선 모델Y와 사이버트럭 등 차세대 전기차가 생산되고 있고, 주변으로 관련 부품 업체들이 밀집한 상태다.
삼성전자 역시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며 인근 테일러에는 두 번째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이들 거점은 차로 약 30~40분 거리에 있다.
업계는 이번 계약이 표면적으로는 테슬라가 삼성에 인공지능(AI) 칩 제작을 위탁한 형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역 중심 공급망 구축과 기술 시너지를 노린 전략적 제휴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머스크 CEO는 계약 금액(약 22조7648억원)과 관련해 "그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경 연구위원은 "머스크 CEO는 지금 차세대 제품인 'AI6' 칩을 빨리 생산해 시장을 선도하려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주 물량이 초과돼 양산 속도가 나지 않을 것 같은 TSMC보단 생산 거점들이 테슬라와 가까운 삼성과 손잡는 게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사 간 협력은 기술적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가령, 테슬라의 AI 기술을 삼성의 파운드리 공장에 접목하고 테슬라는 삼성의 파운드리 공정 기술을 배워 사업 확대에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기술협력이 폭넓게 이뤄지며 양사가 한미 간 반도체 협력의 새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인텔이 파운드리 투자 및 생산을 유보한 가운데, 삼성은 테슬라라는 전략적 고객사를 확보하며 시장 2위 입지를 강화할 기회를 잡았다.
임 전 사장은 "테슬라와의 협력은 삼성이 TSMC와 차별화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삼성으로선 뭔가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테슬라의 AI 칩 생산부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 연구위원도 "파운드리는 때를 기다리고, 때가 오면 심혈을 기울여서 큰 수익을 내야 하는 위탁수주 사업"이라며 "삼성 파운드리도 이제 때가 온 것으로 보이고 지금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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