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대했던 유럽마저 ‘빗장’… 경제난·극우 돌풍에 ‘反이민’ 확산 [심층기획-자국 우선주의에 쫓겨나는 난민들]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7-30 06:00:00

강제이주민 1억명 넘어… 10년새 2배
모국 떠난 난민은 4300만명에 육박
41%가 어린이… 폭력·질병 등 무방비
독일·프랑스, 추방 위한 법제도 마련
오스트리아는 시리아인 첫 강제 송환
글로벌 경기침체·인플레이션 맞물려
“이민자가 일자리 빼앗아” 불만 고조
정치권, 사회불안 요인 부각 표심 자극
주요 선거 앞두고 강경노선 심화 관측

전쟁,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 등으로 고향을 잃고, 고국마저 떠난 세계 이주민 수가 1억명을 돌파했다.
불과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고, 역대 최고치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이주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들 대다수는 갈 곳 없이 건강과 범죄 등 위험에 노출돼 있다.
어렵사리 다른 나라에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 이들이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 ‘반(反)이민정서’가 커지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쫓겨날 위기로까지 몰리는 상황이다.
난민 유입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유럽 국가들에서 최근 ‘자국 우선주의’가 강해지고, 이에 따라 국경을 강화하거나 난민을 송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 위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강제이주민 1억명… 해마다 증가

29일 유엔난민기구(UNHCR)가 세계일보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전쟁이나 자연재해, 경제 붕괴 등으로 근거지를 잃은 강제이주민은 약 1억2200만명이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전 세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강제이주민은 고향과 국가를 떠나 다른 나라로 유입된 이주민인 ‘난민’과 고향을 떠났지만 모국에 머물고 있는 이주민인 ‘실향민’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2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넷자림 통로 인근에 위치한 미국 주도의 가자인도주의재단(GHF) 배급소에서 식량 등 구호품을 지급받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짐을 짊어지고 누세이라트 난민 캠프로 복귀하고 있다. 가자지구=AFP연합뉴스

강제이주민의 3분의 1은 수단,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네 나라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단에서 약 1430만명의 이주민이 발생해 가장 많았고, 시리아(1350만명), 아프간(1030만명), 우크라이나(880만명) 순이었다.
전쟁이나 내전, 정치적 혼란, 자연재해는 이들 나라에서 강제이주민이 대량으로 발생한 공통된 원인이다.
실향의 원인 70%는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 및 홍수·가뭄 등 물 위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모국을 떠나 난민이 된 이들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난민의 수는 4270만여명으로 이들 중 69%가 시리아, 베네수엘라, 우크라이나, 아프간, 남수단 5개국으로 집계됐다.
난민의 63%는 이웃국가에 수용돼 있으며 73%는 선진국이 아닌 저소득 또는 중소득 국가에 머물고 있다.
난민의 41%가 어린이라는 점은 난민 보호의 절실함을 부각하는 지점이다.
폭력을 경험한 난민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을 가능성은 3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UNHCR는 보고서를 통해 “강제이주민 규모가 최근 12년 연속 증가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갈등과 위기가 이어지는 한 난민 증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쫓겨나는 난민들… ‘인도주의’에서 ‘반이민주의’로

난민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이들이 타국에서 정착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난민에 대한 인도적 관심이 크고,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국가들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강해지고,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 이주에 대한 거부감이 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리아 내전으로 2015년 130만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왔을 때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우리는 해낼 수 있다”며 국경을 개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독일 분위기는 그때와 판연히 다르다.
지난해부터 육로 국경에 상시 검문을 다시 도입했고, 불법 체류자를 쫓아낼 제도를 마련하는 등 난민과 관련한 법규를 강화했다.
또 아프가니스탄 난민 송환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는 탈레반 정부 직원의 독일 근무를 최근 승인했다.
결국 7월에 81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본국에 강제 송환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도 2월 야당과 타협해 추방 절차 간소화와 비자 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이민법에 서명했다.
반이민정서를 적극 활용해 지난해 총선에서 123석의 의석을 확보한 극우성향의 국민연합(RN)의 돌풍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때 시리아 난민 상당수를 수용했던 오스트리아의 행보는 더욱 급격하다.
오스트리아는 올해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시리아 난민의 본국 송환을 공식 추진하고 있다.
시리아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이어져온 ‘시리아 송환 불가’라는 원칙을 뒤집은 조치로 유럽에서는 15년 만에 첫 시리아인 강제송환 사례이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오스트리아의 결정이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시리아는 여전히 민간인의 위험이 이어지고 있어 귀환은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극우의 부상… 반이민주의 전망

난민을 대하는 태도가 차가워진 데는 난민 수용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이 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가 누적되면서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와 같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리아 출신 이민자가 흉기 난동을 벌이는 등 일부 이민자 범죄가 부각되기도 했다.
이는 자국에 유입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키웠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지위가 안정적이지 않은 난민을 사회 불안 요인으로 보는 경향을 강하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파 성향의 정당들은 이런 불안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면서 세력을 키우고 있다.
국가의 정체성과 치안이 위험에 처했다는 이유로 난민을 포함한 이민자 배척 정서가 정치판을 뒤흔드는 주요한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프랑스 정당 RN, 이민법을 대폭 강화한 스웨덴, 핀란드의 우파 연립정부, 북아프리카발 난민선 차단을 국정 우선순위로 내세우며 지지율을 40% 이상 끌어올린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정권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내년 유럽 주요국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이민자에 대해 강경 노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고, 전 세계 분쟁지역의 평화도 요원한 상황에서 대규모 난민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슈테펜 카일리츠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유럽 주요 보수 정당들이 극우 정당의 이민 강경 노선을 수용하면서 난민·이민 통제가 지속될 것”이라며 “이러한 추세로 인해 10년 이내에 극우 정당이 보수우파를 능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