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치솟는 쌀값…"일본 같은 사태 벌어질 수 있다"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5-07-27 08:30:00

올해 초 일본을 곤욕스럽게 만든 '쌀값 폭등 사태'가 한국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까. 잇따른 이상 고온, 폭우 등 기후 변화로 인해 작황이 나빠지면서 국내 쌀 소매가가 급등하고 있다.
농가에선 정부의 적극적인 농업 정책 없이는 한국도 일본 같은 쌀값 파동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며 경고한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농넷)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국내 쌀 소매가(20㎏) 가격은 6만112원으로 6만원대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로는 14%, 연간 평균가 대비로는 16% 증가한 수치다.
쌀 소매가가 6만원을 넘긴 건 올해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쌀 생산량 감소가 가격을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KREI)에 따르면, 지난 1~4월 산지 유통업체의 벼 매입량은 15만7000톤(t)으로 전년 대비 1만6000t가량 줄었다.
쌀 공급이 줄면서 재고도 감소했다.
지난 4월 기준 쌀 재고량은 71만2000t으로, 전년 대비 21만t 줄었다.
농협 재고량은 63만5000t으로 전년 대비 20.4% 감소했으며, 민간은 7만7000t으로 39.6% 급감했다.

쌀 생산이 줄어든 배경에는 최근 들어 악화 중인 기상 이변이 자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이달 중순 호우 피해로 인해 전체 벼 재배면적 2만5065헥타르(ha)가 침수 피해를 봤다.
전체 벼 재배면적의 3.6%에 해당한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 갑작스러운 폭우 등으로 인해 경작 단계부터 벼농사를 망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정룡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2년 연속으로 기상 이변 때문에 벼농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달 폭우로 못자리(모를 기르기 위해 논, 밭 등에 설치한 육묘장)가 쓸려나가는 피해를 본 농가가 많다"고 전했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해에도 이상 고온 현상 때문에 벼농사가 힘들었다.
9월까지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벼멸구가 자연 소멸하지 않고 더 많이 번식했다"며 "멸구는 볏대의 즙을 빨아 먹어 벼를 죽이는데, 농부들은 이 현상을 '폭탄 맞았다'고 한다.
작년 벼멸구 폭증 사태로 수많은 논이 폭탄 맞은 상태가 됐다"고 토로했다.

올해 초 전년 대비 쌀값이 무려 99.3% 폭등하는 '레이와 쌀 파동'을 겪은 일본 또한 여러 요인이 겹쳐 쌀 생산이 급감한 바 있다.
우선 이상 고온으로 벼농사에 실패한 농가가 늘었고, 정부가 1971년부터 시행 중인 쌀 감산 정책, 이른바 '감반 정책'의 영향도 겹쳤다.
일본은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쌀이 과잉 생산되고 국민의 식단도 서구화하기 시작하자, 벼농사를 줄이는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김 사무총장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일본이 겪은 쌀 수급 대란은 정부의 감반 정책과 기상 이변이 만든 벼농사 실패가 겹친 사태였다"며 "쌀 소비량이 줄어들 때는 체감할 수 없었겠지만, 농가 감소와 수확량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같은 시기엔 식량 공급 불안을 초래하는 조건이 맞아떨어져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쌀 정책도 일본처럼 공급 감소 유도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일본과는 약 10~20년 격차가 난다"며 "감산 기조와 기상 이변이 합쳐지면 언제 우리도 일본 같은 사태가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양곡관리법(양곡법)을 통해 곡물 수급 계획을 수립해 왔다.
전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선 여야 합의로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해당 법안은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해 가격을 안정화하고, ▲쌀 농가가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 지급하는 보상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이와 관련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쌀값 폭락을 방지할 가격 정책이 어떻게 마련되는지가 핵심으로,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모니터링 중"이라고 전했다.
또 "쌀 농가가 재배 작물을 바꿀 때 보상을 지급하는 법안은 정부의 강제성이 아닌 농민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해야 한다.
강제성이 있다면 (농가에서)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 사무총장은 "현재 정부는 한국 기후의 아열대화에 맞춰 열대 과일을 심는 등 재배 작물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며 "하지만 아무리 평균 기온이 높아져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매년 2~3월 기습 한파가 닥쳐 과일 꽃이 시든다.
이런 환경에 쌀, 고구마, 고추, 마늘을 파파야나 망고로 대체하는 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