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간이 갈 수록 보고 싶어요"…제주항공 참사현장 못 떠나는 유족들더팩트 기사제공: 2025-06-30 00:06:03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충돌·화재로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29일로 정확히 6개월을 맞았다. 유족들은 계엄과 탄핵, 그리고 이어진 대선 등으로 인해 억울한 죽음이 잊히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한 유족이 지난 2월15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분향소에서 열린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49재 합동위령제에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 /무안=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다빈 기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충돌·화재로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29일로 정확히 6개월을 맞았다. 사랑하는 가족은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무안공항에 남아 참사 현장을 지키고 있다.

유족들은 공항을 떠나지 못한다. 사고 원인과 경위 등 각종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계엄과 탄핵, 그리고 이어진 대선 등으로 억울한 죽음이 잊히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참사로 아들과 예비 며느리를 잃은 나명례(60) 씨와 부모를 한꺼번에 떠나보낸 고재승(43) 씨도 마찬가지다.

나 씨는 "지난해 12월29일에 시간이 멈춰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라며 "유족들은 가족의 죽음이 사회에서 지워질 것 같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고 씨는 "공항은 가장 끔찍한 장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이) 마지막에 있었던 장소"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보고 싶고 심적으로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유족들은 이재명 정부를 향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공식 면담도 없었고,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이 대통령의 호남 방문 당시 진행된 지역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한 유족이 발언 기회를 얻어 상황을 설명했던 것이 전부다. 이 대통령은 유족들의 발언에 "진상규명은 수사기관에서도 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 지금 당장 제가 나선다고 특별히 더 뭐가 될 것 같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고 씨는 "특별법 등 도움을 받았지만 유족들이 느끼는 체감은 크지 않다"며 "가장 중요한 진상규명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나 씨 역시 "명확한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없이 왜 이렇게 조용히 묻히는 것이냐"면서 "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함께 밝히고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뿐"이라고 했다.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다음 달부터 서울로 올라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 삼보일배 집회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나 씨와 고 씨는 "179명의 소중한 생명이 왜 무참히 희생돼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진상규명이 가장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나 씨, 고 씨와의 일문일답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은 "179명의 소중한 생명이 왜 무참히 희생돼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진상규명이 가장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이틀째인 지난해 12월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는 모습. /무안=장윤석 기자

- 제주항공 참사로 떠나보낸 가족들은 어떤 분들이었나.

나명래(이하 나): 사랑하는 아들과 예비 며느리를 한꺼번에 잃었다. 올해 3월에 결혼식을 앞둔 신혼부부였고, 축복받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날이 창창하던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중순 혼인신고를 미리 마친 기념으로 여행을 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신혼집과 가전, 가구들도 마련해두고 3일밖에 살지 못했는데, 아들 신혼집을 도저히 손댈 수가 없어 모든 게 그대로 있다. 두 사람이 살아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을지 생각만 해도 매일같이 눈물이 난다.

고재승(이하 고): 부모님 두 분을 잃었다. 원래 고향은 전남 순천인데 지난 2020년부터 서울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살기 시작했다. 부모님 친구들은 전라도에 계시는 상황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가셨다가 사고를 당했다. 부모님이 손자, 손녀도 자주 본다고 좋아하셨는데 가족들이 모여 산 지 5년밖에 안 돼 이런 일이 일어났다.

- 다시 떠올리기 힘든 일이지만 참사 당시의 심경을 전한다면.

나 : 아직도 참사 당시의 심경을 떠올리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럽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설마'하는 마음과 '그래도 살아 있겠지'라는 절박한 희망 속에 공항으로 달려갔다. 끝내 아이들을 안아볼 수조차 없었다.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고생만 하던 아들이 며느리와 행복할 일만 남겨두고 떠났다는 사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고 : 기억의 오류인지, 회피인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혼선이 많다. 스스로 한 행동이나 말을 친구나 가족들은 다르게 기억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사고가 났을 때는 생존자가 있다고 뉴스에 나와 부모님이 살아 계신 줄 알았다. 공항으로 갈 생각도 안 하고, 어디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전화를 돌렸었다.

- 참사 이후 6개월을 맞았다. 유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 : 이제 일상생활이라는 말이 낯선 단어가 돼버렸다. 사랑하는 가족을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잃은 지난해 12월29일에 시간이 멈춰 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일터를 잃은 분들도 있고 매일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참사 현장에 남아있는 분도 있다.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를 받거나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유족도 적지 않다. 우리 가족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설명 듣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형벌이자 지옥이다.

고 : 길게 보면 6개월이지만 참사 직후와 똑같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보고 싶고 심적으로 더 힘들어졌다. 정신적으로 약해지다 보니 신체적 건강이 나빠진 경우도 있다. 아직 일과 유가족으로서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솔직히 일의 능률도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동료들이나 고객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회사에 다니니 병원 상담도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평소 어떻게든 계속해보려 했지만 조금 쉬고 싶은 마음에 치유 휴직을 계획하고 있다.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은 "179명의 억울한 희생자들과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끝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까지 무안공항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이틀째인 30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인근에 애도의 편지와 함께 국화꽃이 놓여 있는 모습. /무안=장윤석 기자

- 아직 공항에 남아 있는 유족들도 있다. 유족들이 여전히 공항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 참사 현장인 무안공항에 '쉘터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당번을 정해 텐트에서 숙식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까지 공항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 참사를 너무 빨리 잊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정부와 항공사, 어느 누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아 유족들은 공항을 떠날 수 없다. 단순히 슬퍼서 머무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고, 바꾸기 위해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쉘터는 유가족들의 아픔과 절규, 그리고 진실을 향한 마지막 희망이 깃든 공간이다. 179명의 억울한 희생자들과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끝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남겨진 유가족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이라 믿고 있다. 공항에 머문다는 건 결코 선택이 아닌 간절한 외침이다.

고: 사실 공항은 가장 끔찍한 장소다. 어떤 분은 정말 끔찍해서 쳐다도 보기 싫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이) 마지막에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무슨 기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고 싶은 마음이다. 집에 따로 있으면 더 공허하고 누구한테 말도 못 한다. 유가족들끼리 공항에 같이 있으면 다른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니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치유의 과정인 것 같다. 공항을 하루도 안 떠난 분도 있고 퇴근 후 공항에 오거나 서울, 경기 등 타 지역에 있는 분들은 주말에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새 정부에 느끼는 서운함이 있는지.

나 : 이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 이전 참사의 유가족을 위로하고 현장을 방문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과 공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정작 제주항공 참사는 대통령의 목소리도, 관심도 없이 침묵한다는 점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대통령실에 공식 면담도 요청했지만 어떤 형태의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 참사는 왜 이렇게 조용히 묻히고 있는 것인지, 유가족의 절규는 왜 울림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가족을 잃은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응답을 바란 것이지 특별한 대우를 바란 게 아니다. 그 바람은 지금까지 외면당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 참사는 기억하고 특정 참사는 침묵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일인지 대통령에게 되묻고 싶다.

고 : 이 대통령은 참사 당시 공항에 와 메모도 하고 무릎 꿇고 유가족들과 얘기도 했다. 지난 1월 추모식 때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는데 당선 이후에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많이 서운하다. 최근 특별법이 통과됐다는 대통령실 대변인 브리핑으로만 끝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을 하지 않는데 다른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유가족들을 어떻게 대할까 우려된다. 특별법 등으로 도움을 받은 것도 있지만 유가족으로서 크게 체감되지 않았다. 실제로 부모님을 정리할 때 상복이나 세금 등 행정적 저리 과정에서 공감해주는 기관도 있었지만, 오히려 유가족들이 발 벗고 찾아 나서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국토교통부는 참사 관련 기관으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진상규명에는 소극적이다. 국회법이나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항상 뒤로 빠지고 반응도 느리다.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은 "정부에 바라는 건 진상규명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모습. /강주영 기자

- 유족으로서 정부에 바라는 점은.

나 : 179명의 소중한 생명이 왜 무참히 희생돼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진상규명'이 가장 절실하다.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명확히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참사는 단순 사고나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와 부실한 대응, 그리고 시스템적 실패가 겹친 명백한 '인재'다. 짚어야 할 문제가 쌓여있지만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은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이 수십 번 촉구하고 요청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정치적인 일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 책무임을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직접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아직까지 참사 현장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제대로 알아주길 바란다. △국가 차원의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및 독립적 진상조사 착수 △항공안전시스템 전면 점검 및 구조적 문제 관련 제도 개선 △투명한 정보 공개 △참사 기억 공간과 추모 사업을 포함한 장기적 치유, 기억 사업 마련도 강력히 요구한다.

고 : 정부에 바라는 건 진상규명밖에 없다. 정보 공개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뭐가 잘못됐는지, 자료를 찾으며 나름 알아보니 '이건 언젠가 일어났을 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불감증의 사회라면 누구든지 언제나 갑자기 예비 유가족이 될 수도 있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많은 관심을 두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고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유족들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나 : 내달 5일에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유가족 10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고 대통령실에 면담을 재차 요청할 예정이다.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서명운동과 추모문화제, 캠페인 등도 기획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 항공안전 기준과 참사 대응 시스템 개선을 위한 국제 법률 자문도 검토 중이다. 참사에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제주항공 참사를 절대 잊혀버리도록 둘 수 없다. 잊힌다는 것은 곧 진실도, 책임도, 재발 방지도 없어진다는 뜻이기에 유가족들은 계속 거리로 나서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 싸움은 길고 힘들겠지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고 : 내달 3일부터 매일 한 명씩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 한다. 그날부터 시위를 하면 오는 12월28일까지 참사 희생자 수인 179일이 된다. 참사 1주년인 오는 12월29일에는 유가족들이 무안공항에 모여야 하니 그 전날 179명이 될 때까지 매일 한 명씩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5일에도 대통령실 앞 집회가 예정돼 있다. 집회를 통해 유가족들의 의견을 다시 전달하고 싶다. 국민들도 이 참사를 편파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answeri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