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10곳 중 3곳은 침수 '무방비'…장맛비 악몽 시달리는 주민들더팩트 기사제공: 2025-06-21 00:06:06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서울 2만4842곳의 침수 우려 가구 중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된 곳은 1만6281가구(65%)로 집계됐다. /서예원 기자

[더팩트ㅣ이윤경·정인지 기자] 여름철 장마가 시작된 가운데 침수 우려가 있는 서울의 반지하 주택 일부에 여전히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3년 전 악몽이 되풀이될까 불안에 떨고 있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서울 2만4842곳의 침수 우려 가구 중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된 곳은 1만6281가구(65%)로 집계됐다. 침수 우려 가구는 차수판(물막이판)이나 역류방지밸브, 수중펌프 등 대응 시설이 없거나 피난이 어려운 반지하 주택 등을 뜻한다.

서울시는 지난 2022년 8월 시간당 100㎜가 넘는 기록적 폭우에 따른 침수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침수방지시설 무상 설치사업을 추진해왔다.

지난 2023년 7월부터 침수 피해가 발생한 주택 및 저지대 지하 주택을 대상으로 물막이판, 역류방지시설, 수중펌프 등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물막이판은 빗물이 원활히 배수되지 못해 발생한 노면수가 건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시설이다. 역류방지시설은 화장실과 싱크대 등에서 하수가 역류되는 것을 막아준다. 수중펌프는 집으로 들어온 빗물을 빼내는 역할을 한다.

관악구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배모(92) 씨는 "2년 전에 앞집에 물이 차 물을 막 퍼내던 게 기억난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개선되긴 했지만 역시 걱정된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2022년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 주민이 집기를 밖으로 꺼내 침수된 물을 퍼내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지난 2년여 간 서울시의 지원 사업에도 여전히 반지하 10가구 중 3가구 정도는 장마철 침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손모(83) 씨는 "관악구에 10년 째 거주 중인데, 장마 때 심하면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찬다"며 "지하가 다 침수돼 살림살이며 가전제품을 다 버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관악구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배모(92) 씨는 "2년 전에 앞집에 물이 차 물을 막 퍼내던 게 기억난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개선되긴 했지만 역시 걱정된다"고 했다. 임모(54) 씨 역시 "비가 많이 왔을 때는 계단까지 물이 찼고, 차도 침수돼 폐차하는 등 피해가 컸다"며 "당시에도 피난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올해도 장맛비가 오면 이같은 상황이 반복될 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담배꽁초 등 쓰레기로 뒤덮인 빗물받이도 우려된다. 빗물받이는 집중 호우로 도시가 침수되지 않도록 물을 내보내주는 시설이지만, 입구가 막혀있으면 역류의 원인이 된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에는 약 58개의 빗물받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악구 일대의 빗물받이는 덮개로 가려져있거나 담배꽁초, 낙엽 등이 쌓여있었다. 손 씨는 집 앞의 빗물받이를 가리키면서 "매일 두 사람이 와서 점검하고 간다. 근데 꽁초가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고 한탄했다.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 주택가의 빗물받이에 담배꽁초가 쌓여있다. 빗물받이는 호우가 내릴 때 도시가 침수되지 않도록 물을 내보내 주는 시설로써 지난해 기준 서울시에는 총 58만여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윤경 기자

건물 소유주의 반대로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되지 못하는 곳도 문제로 지적된다. 세입자가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선 건물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침수 우려 가구 중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곳에는 △미희망 가구 △거주자 부재 가구 △멸실 △공가 △급경사로 인한 구조적 설치 불필요 등 사유가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가구들 대부분은 거부하거나 권유에도 신청을 안 한 경우"라며 "집이 비어 있거나 철거 후 신축하는 경우에도 설치가 안 돼 있다"고 설명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도 "설치를 반대하는 집주인들을 여러 차례 찾아가 설득하는 등 권고를 하고 있지만 사유재산이라 강제할 방법은 없다"며 "설치하면 괜히 위험한 건물처럼 보인다고 우려하는 집주인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반지하 공간을 사용하지 않는 등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희정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중앙에 한강이 있는 서울의 지형 특성상 집중 호우로 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지면보다 낮은 곳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된다"며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택을 주거 공간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문제는 그만큼 저렴한 집이 없어지니까 그런 공간이 사라진다는 게 반드시 좋은 건지에 대한 의견들도 있다"며 "임대 주택 등 대안적인 주거를 마련하거나 지형적인 특성을 고려해 주거지를 계획하는 등 주거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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