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에 의존하던 초대형 풍력발전기의 국산화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하 에기연)은 풍력연구단 유철 단장 연구팀이 독자 기술로 초대형 풍력 블레이드 설계 플랫폼과 제작·시험이 가능한 통합 인프라를 구축, 12㎿급 블레이드를 설계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국제 인증기관의 설계 인증을 받았다고 19일 밝혔다.
산업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2024년 대비 2038년 4배까지 끌어올리고, 이중 30%가량을 풍력발전이 담당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기존 풍력발전기보다 높은 출력의 대형 풍력발전기가 필요하다.
실제 10㎿급 이상의 대형 풍력발전기는 현재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5㎿급 중소형 풍력발전기보다 설치 면적 대비 경제성과 유지보수 효율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현재 풍력발전 핵심 부품의 국산화 비율은 34%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10㎿ 이상급 풍력발전기의 핵심인 블레이드는 자체 설계·제작 능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거의 없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대형 블레이드 설계를 위한 국산 플랫폼 'KIER-블레이드포지(KIER-BladeFORGE)'를 개발했다.
블레이드 설계의 핵심은 공력 설계와 구조 설계다.
기존에는 바람이 블레이드 표면을 지날 때 발생하는 힘을 제어하기 위해 공력 설계를 먼저 수행한 후 안정성 향상을 위한 구조 설계를 진행했다.
하지만 공력 설계 내용이 조금이라도 변경되면 구조 설계를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어 효율적이지 않았다.
이와 달리 연구팀은 최신 인공지능(AI) 기법과 최적화 알고리즘을 적용해 블레이드의 단면 형상, 비틀림 각도 등 미세한 설계 변수까지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는 공력-구조 통합 설계 플랫폼을 구축해 기존 설계 방식의 한계를 극복했다.
블레이드 설계 전체 과정을 자동화한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기존 3~4주 이상 소요되는 고반복 수작업 방식보다 설계 최적화 시간을 50% 이상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개발된 플랫폼은 한국선급의 개념승인(Approval in Principle·AIP) 인증을 획득해 신뢰성과 기술적 타당성을 공인받았다.
개념승인은 조선해양 및 산업 플랜트 분야에서 주로 제작되지 않는 개념 설계에 대한 원칙 승인을 의미한다.
신기술, 신개념 설계안, 절차 및 프로그램 등 새로운 개념에 관련된 코드, 기준, 규칙, 표준 조항의 적용, 공학적 분석 및 위험도 평가를 거쳐 해당 기술이 적절한 신뢰 수준과 타당성을 갖췄는지를 검증하는 게 골자다.
연구팀은 설계된 블레이드의 실효성과 안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풍력 블레이드 전주기 시험 통합 인프라도 국내 최초로 구축했다.
구축된 시설은 자동화 기반 블레이드 해석 및 설계실, 최적의 블레이드 형상 구현을 위한 풍동 실험실, 블레이드 제작실과 블레이드 구조 실험실을 포함해 블레이드 축소 모델로 설계-제작-시험에 이르는 전 과정을 테스트할 수 있다.
연구팀은 구축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길이 107m, 12㎿급 초대형 풍력 블레이드를 설계했다.
특히 연구팀이 설계한 블레이드는 국내 기술로 설계된 초대형 풍력 블레이드 중 처음으로 국제 인증기관인 덴마크 DNV로부터 설계 인증을 획득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설계 안정성과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유철 단장은 "이번 성과는 설계부터 제작, 시험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 연구 인프라를 자체 기술로 구축했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설계한 초대형 풍력 블레이드가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며 "에기연은 앞으로 기술 고도화와 상용화를 지속 추진해 국내 풍력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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