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협상] 미국산 에너지 구매한다는데…계산기 두드리는 정유업계더팩트 기사제공: 2025-08-01 00:06:03

한국과 미국 간 상호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 미국산 에너지 구매가 포함되면서 정유업계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한국과 미국 간 상호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 미국산 에너지 구매가 포함되면서 정유업계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 올해부터 4년 동안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약 138조9000억원) 어치를 사오기로 했는데 정제마진 악화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정유업계가 당장 원가 부담이 큰 미국산 원유 비중을 늘리기는 쉽지 않아서다.

한국과 미국은 30일(현지시간)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내용의 무역 합의를 체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한국 협상 대표단과 회담한 뒤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미국은 한국과 완전하고 포괄적인 무역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한국은 1000억달러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고, 한국이 추가로 투자 목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유업계는 당장 미국산 원유 비중의 확대보다는 일부 비중 조정이 이뤄질 것 같다는 의견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중동산 원유를 미국산으로 다 바꾸기에는 국내 정유사들의 정제설비가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돼 있고 안정성도 중동산이 미국산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수익성도 고려해야 하는데 미국산 원유가 다른 지역 원유보다 비싸면 실적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0억달러라는 액수가 원유뿐만 아니라 LNG 등 다른 에너지가 포함된 금액이고 4년 동안 나눠서 구매해 큰 폭의 비중 확대라기보단 일부 비중 조정이 될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미 업계는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해오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의 2025년 6월 석유수급 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원유수입 지역 1위는 중동으로 66.9%를 차지했다. 미주 26.2%, 아시아 6.2가 뒤를 이었다. 국가별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38.1%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이 17.2%로 그 뒤를 이었다.

중동산 원유 비중은 지난해 4월부터 3개월간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한때 80%가 넘을 정도로 높았던 것에 비하면 원유 도입선이 다변화된 셈이다. 원유 도입국도 지난해 6월 11개국에서 올해 6월 15개국으로 확대됐다.

중동발 정세 불안정 영향이 컸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올해 워낙 중동 정세불안이 심하다 보니까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특정 지역의 원유 도입이 과도하게 늘면 지정학적으로 불안할 수 있어 원유도입국을 다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 간 상호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 미국산 에너지 구매가 포함되면서 정유업계가 신중 모드에 들어갔다. 미 텍사스주 골드스미스 인근 유정의 원유시추기 펌프잭 뒤로 해가 지고 있다. /뉴시스

정부도 비슷한 입장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1000억달러는 약간의 중동산을 미국산으로 바꾸고 이런 정도의 구성 변화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늘 우리 경제 규모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수입액이기 때문에 구매가 무리 없는 액수"라고 말했다.

정제마진 악화로 실적이 부진한 업계는 당장 원가 부담이 큰 미국산 원유 도입을 늘리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설비는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돼 있다. 다른 지역의 성상이 다른 원유를 처리하려면 설비 개선이 필요하다. 중동에 비해 먼 수송 거리 역시 물류비와 기타 비용 상승으로 연결돼 원가 부담이 가중된다.

정유4사는 모두 1분기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분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에쓰오일은 2분기 연결기준 실적으로 매출 8조485억원, 영업손실 344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215억원 영업손실에 이은 2개 분기 연속 적자다. SK이노베이션도 2분기 매출액 19조3066억원, 영업손실 417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은 810.9%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실적 발표에서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두고 "원유 수입 증대를 위해서는 경제성이 맞아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 조건이 제시된 바가 없어 경제성 검토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E&S는 국내 민간 기업 중에서는 미국 LNG 수입량이 가장 많은 편이고, CB 가스전을 고려하면 충분한 물량이 이미 확보된 상황이라 추가 소싱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발표가 오늘 나온 상황이라 지금 정해진 건 없고 경제성을 검토하고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정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증권의 '한미 무역합의 내용 및 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LNG 수입물량은 지난해 300억달러 규모이며 미국산 비중은 10% 내외"라며 "일반적인 LNG 계약은 20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연간 50억달러 규모 수입 가정시 수입 국가내 비중 조정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zz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