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카드사,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으로 '선점 경쟁'
한은 CBDC 2차 파일럿 보류…"통화정책 vs 시장혁신" 투트랙 해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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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과 카드사는 최근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시장 선점을 위한 상표권 경쟁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반면 한국은행 주도로 추진됐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은 잠정 중단됐다. /챗GPT 생성이미지 |
가상자산이 실물자산과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새로운 화폐 혁신을 이끌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송금·결제 등 실생활 영역에서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달러 패권 강화라는 또 다른 양극화, 국가 통화 주권의 약화, 무분별한 민간 코인 확장, 감독 사각지대 속 금융 리스크 등 새로운 구조적 위기를 동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팩트>는 [스테이블 혁명] 기획을 통해 디지털 화폐로서 스테이블코인이 갖는 잠재력과 한계를 짚고, 국내외 정책당국과 금융업계가 당면한 과제를 함께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국내 주요 은행과 카드사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채비에 나서면서 '디지털 원화' 주도권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는 민간 주도 혁신을 강조하지만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유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간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공존할지 충돌할지 기로에 섰다.
◆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권 잇달아 출원…은행·카드사 '브랜드 선점' 나서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과 카드사는 최근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시장 선점을 위한 상표권 경쟁으로 분주하다.
국내 4대 은행은 모두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 출원을 완료했다. KB국민은행은 'KBKEW' 등 32건의 상표권을 출원했고 하나은행은 'HanaKRW' 등 16건, 신한금융그룹은 'KRWSHB' 등 21건, 우리은행은 'KRWOORI' 등 20건을 각각 출원했다.
인터넷전문은행 3사(카카오·케이·토스뱅크)도 관련 상표를 출원했다. 카카오뱅크(12건), 케이뱅크(12건), 토스뱅크(비바리퍼블리카·24건) 등이다. BNK금융지주, 제주은행, BNK부산은행 등도 상표 출원에 나섰다.
카드사들도 특허 출원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카드는 지난 18일 'KRWRE' 등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 25개를 출원했다. 앞서 신한카드는 지난달 27일 'SHCw·SKRW' 등 스테이블코인 관련 8건의 상표를 카드사 중 가장 먼저 등록했다. KB국민카드도 KBCSTB 등 35건, 우리카드 역시 STBWC 등 9건을 출원했다.
주요 은행들은 오픈블록체인·DID협회(OBDIA) 산하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하고,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에 돌입했다. 컨소시엄 참여 은행으로는 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IBK기업·Sh수협·케이뱅크·부산·대구·은행 등 10개 은행이 참여했다.
업비트를 비롯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 역시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나무는 지난 1일 네이버페이와 제휴를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JV' 설립을 검토 중이다. 빗썸은 최근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육성 공모전'을 열어 개발자·스타트업을 모집하고 최대 2억원 상금 및 후속 투자를 약속했다.
이들이 'KRW코인' 브랜드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이 최근 디지털자산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미국의 발빠른 움직임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미 상·하원은 최근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감독 체계를 담은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의결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명도 마쳤다.
국내도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스테이블코인 인가제를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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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은 시중은행과 추진하던 CBDC 파일럿 '프로젝트 한강' 2단계 테스트를 보류했다. /이선영 기자 |
◆ 한은 CBDC 2단계 실험 '잠정 멈춤'…'통화정책 훼손' 우려 vs '역할 분담' 해법은
반면 한국은행 주도로 추진됐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한국은행은 최근 시중은행과 추진하던 CBDC 파일럿 '프로젝트 한강' 2단계 테스트를 보류했다. 참여 은행들은 "민간 스테이블코인 규제 로드맵이 먼저 필요하다"며 부담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은은 지난 4월부터 6월 말까지 7개 은행과 함께 금융소비자 10만명을 대상으로 CBDC 1차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개인 간 송금이 가능하게 하고 결제 가맹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2차 테스트를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CBDC 대신 미국 달러 패권을 강화활 스테이블코인에 주력하면서 국내에서도 CBDC 정책이 힘을 잃은 것으로 풀이된다. 스테이블 코인 관련 사업 검토를 시작한 은행들이 CBDC 테스트까지 참여하기엔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다. 일정은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으며 참여를 희망하는 금융기관에 한정해 재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되며 CBDC와의 역할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 대체재라 비은행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이 상당히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은행 아닌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도 "은행들만 허용하더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생기면 외환 자유화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굉장히 많아짐으로써 이 문제가 벌써 현실화됐다"며 "지급결제 업무를 비은행 기관이 하게끔 허용한다면 은행 산업의 구조, 은행 사업의 수익 구조 등이 많이 바뀌게 된다"고 했다.
이에 업계에선 CBDC는 대규모 B2B·공적 영역, 스테이블코인은 소매 결제·송금에 특화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CBDC와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대량 결제 vs 시장 혁신'으로 역할을 나누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을 비롯해 일본, 싱가포르 등도 유사한 모델을 실험 중이다. 한국은행 역시 CBDC 파일럿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CBDC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지급 효율성과 통화정책의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며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발행 구조도 능하다는 점에서 대안적 모델로 주목받는다"고 진단했다.
다만, 은행권에선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비슷한 기술이고 연계되는 건은 맞고 안정성이 중요한 결제시장에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라면서도 "역할을 분담하면 CBDC는 은행 중심, 스테이블코인은 비은행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고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에 신규 플레이어로 성공적인 진출을 이뤄내기를 원하는데, 이 부분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의 '인가'와 '감독' 권한의 분리 여부도 제도 설계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금융위원회와 한은은 '2단계 디지털자산법' 작업의 핵심 과제로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를 마련하겠다고 예고했으나, 세부안(적용 법령·인가제·100% 준비금·공시 의무 등)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규제 초안은 빠르면 올해 하반기에 윤곽이 나올 전망이지만,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여부 등 구체적 입법 경로는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금융위원회를 인가 주체로, 한국은행에 일부 감독 권한을 부여하는 구조다. 그러나 한은은 인가 단계부터의 권한 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고경철 한국은행 전자금융팀장은 지난달 열린 한국금융법학회 학술대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며 "인가 단계부터 중앙은행에 실질적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규제 공백이 길어질수록 달러·엔화 등 외화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CBDC와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기능·리스크를 명확히 구분하고, 투트랙 거버넌스를 서둘러 설계해야 '디지털 원화 주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