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부당 합병 의혹 무죄 확정
삼성 둘러싼 위기감 커…경영 보폭 넓힐 듯
경제단체 "이재용 회장 강력한 리더십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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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향후 경영 행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10여년 동안 발목을 잡은 사법리스크가 해소돼 온전히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서다. 삼성의 주력 사업이 주춤하는 등 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시점이기도 하다. 재계는 이 회장의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기대하고 있다.
18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전날(17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사건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진 지 5년 만에 모든 혐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때부터 10여년 동안 이어진 사법리스크 족쇄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대법원 최종 판단을 통해 합병이 적법했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 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최종 판결은 일정 부분 예상된 결과다. 1심과 2심 모두 이 회장과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또는 지배력 강화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으며, 합병 비율이 불공정했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통상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는 법률심으로, 원심의 무죄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었다.
물론 삼성은 막판까지 어떠한 결과를 예단하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대법원 판결 전까지 혹시 모를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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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측 변호인단이 지난 17일 상고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대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성락 기자 |
결과적으로 이 회장은 더 이상 경영 제약을 받지 않게 됐다. 앞서 이 회장은 1·2심에서 100차례 넘게 법정에 출석했다. 이 회장이 잦은 법정 출석 등 사법리스크를 안고 경영 활동을 펼치는 오랜 기간 동안, 삼성은 사업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사업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삼성은 큰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글로벌 공급망이 급변하고 있고, 기술 패권 경쟁 또한 격화되고 있어 빠른 해법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삼성 입장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확대 등 시장 흐름을 제때 읽지 못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선점하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매분기 수조원대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점도 뼈아픈 상황이다.
재계는 위기 극복을 위한 이 회장의 향후 경영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된 일정은 없지만, 국내외 출장을 통해 주력 사업을 집중 점검하고, 아울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바쁜 움직임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 언급되는 당면 과제는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실적 개선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반도체 부진 여파로 전년 동기 대비 55.94% 줄어든 4조6000억원(잠정치)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신사업 강화 차원의 투자 시계도 더욱 빠르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당장의 경제 위기를 이겨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20년, 30년 다음 세대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삼성은 AI와 반도체, 바이오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 산업과 관련한 글로벌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 중이다. 로봇 플랫폼 전문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독일 플랙트그룹,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 영국 AI 스타트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 등을 인수했다. 최근에는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 젤스와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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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경제단체들은 이 회장의 무죄 판결이 확정되자,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며 "첨단 산업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해당 기업의 경영 리스크 해소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이번 판결은 삼성이 첨단 기술 혁신에 집중하고, 글로벌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상철 홍보실장은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 더 많은 일자리 창출로 우리 경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법원 판결 이후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등기이사 복귀를 통해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신사업 발굴을 위한 대규모 투자 추진 등 '뉴삼성' 구축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회장은 2016년 10월 임시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지만,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다 2019년 10월 재선임 없이 임기를 마쳤다. 현재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사법리스크라는 안개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회장이 이사회 복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며 "'사내이사 회장'이 되느냐, 아니면 '대표이사 회장'이 되느냐 여부도 중요한데, 대표이사를 맡고 경영 최일선에 나서면서 그룹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ocky@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