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곧 현실화…재계 "부작용 최소화해 달라"
"노란봉투법·주 4.5일제, 반드시 가야 할 길" 재계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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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왼쪽에서 3번째)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경제단체 상법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하반기 경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재계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우려를 표명했던 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상법 개정안은 사실상 처리 막바지 관문에 들어섰다.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에 대한 논의도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분위기다.
1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경제6단체 상근부회장단은 전날(6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 관련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는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재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다. 상법 개정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다.
그간 재계는 상법 개정을 반대해 왔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되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호소했다. 행동주의펀드들의 과도한 배당 요구, 경영 개입 등이 빈번하게 돼 기업들이 경영에 전념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았다. 주요 의사 결정 차질로 인한 경쟁력 약화도 우려됐다.
이번 간담회는 상법 개정 관련 민주당의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한 자리였다는 평가다. 재계의 반대에도 조만간(임시국회 내) 처리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로 회부된 후 3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법 개정을 반대하던 국민의힘도 '전향적 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물론 "부작용을 최소화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추후 재계의 의견이 수용될 가능성이 없진 않다. 배임죄 부담 완화 등이 대표적이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과제를 실현하면서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남근 민생부대표는 "소송 남발, 배임죄 확대 우려가 있다. 일단 신속하게 처리하고 앞으로도 보완할 내용에 대해 계속 논의해 가야 한다"고 밝혔다.
추후 보완이 이뤄지더라도 상법 개정안 추진은 재계 입장에서 당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다. 내수 부진에 따른 저성장 위기가 장기화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 대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문제까지 더해져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재계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법안 처리가 추가로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처리를 마무리 짓겠다는 목표가 제시된 상태로, 현재 속도 조절이 이뤄지고 있으나 언제든 테이블 위에 놓일 수 있는 현안이다.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 노조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넓힌다. 또 파업 등 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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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더팩트 DB |
재계는 노동쟁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노사 간 협력보다는 파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쟁 만능주의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사용자 개념 확대의 경우 하청 노조의 원청에 대한 쟁의 행위를 허용해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 생태계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걱정해 왔다.
주 4.5일제, 법정 정년 연장 등 굵직한 노동 관련 과제들이 거론되는 것도 기업으로선 반갑지 않다.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고령 근로자 직무 효율성 저하, 청년층 신규 채용 기회 축소 등의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앞서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노란봉투법은 반드시 가야 할 길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며 "주 4.5일제, 정년 연장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재계는 지속해서 우려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다른 방법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정부의 조율 능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단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경우, 최근 전국 대학 경영·경제학과 교수 1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 정년 연장 등과 관련해 유독 재계에서만 우려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경쟁력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은 '근로 시간 단축'(31.1%)과 '노란봉투법'(28.2%), '정년 연장'(13.1%), '사업 변동·사업 이전 시 근로 관계와 근로 조건 승계 의무화'(13.1%),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12.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경총은 "경영·경제학과 교수들은 새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시장 활성화 정책을 펼쳐야 하며, 이를 위해 근로 시간 운영의 유연성 확대, 직무·성과 중심 임금 체계로의 개편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반면,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 시간 단축, 노란봉투법은 기업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응답했다"고 전했다.
한편, 증감법(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추진도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국회 국정감사·조사와 주요 청문회 때만 할 수 있었던 '동행명령장 발부'가 국회 상임위 등으로 확대되고, 과태료 조항도 신설된다. 핵심 증인이 이유 없이 불출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무분별한 기업인 소환도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국정감사 때마다 기업인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현안과 별개인 질의를 하는 등 '맹탕 국감'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호통을 치며 '망신 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국회 내에서도 무리한 기업인 소환은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삼성전자 CEO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증감법 개정에 대해 "기업인들을 365일 국회로 소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rocky@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