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CBDC 테스트 잠정 중단…은행권 스테이블코인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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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2차 테스트를 잠정 중단한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민간형 스테이블코인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내며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섰다. /박헌우 기자 |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2차 테스트를 잠정 중단한 가운데 국내 '디지털 원화' 주도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은은 통화 주권과 공공성을 강조해왔으나 국회·민간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결국 CBDC 사업을 보류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민간형 스테이블코인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내며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섰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CBDC 2차 테스트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실증 실험은 개인정보 보호, 기술 보완, 법·제도 정비 등의 과제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추진이 사실상 멈춘 상태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기존 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진다. 한은은 이를 통해 결제 시스템 효율화, 통화정책 전파력 강화, 금융 포용성 확대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번 잠정 중단으로 인해 한국형 CBDC 로드맵은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선 한은의 한강 프로젝트 2차 실험이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라는 진단도 나온다. 한은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내년 상반기 재논의·추진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관련 법령 등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다"며 "(2차 테스트에) 적지 않은 인적·물적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법령이 마련될 때쯤 은행과 협의해 테스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는 은행권의 비용 부담도 한몫했다. 1차 테스트에 참여한 7개 은행은 시스템 구축과 마케팅 등에 총 350억원가량을 투입했으나 한은이 구체적인 상용화 계획을 제시하지 않자 추가 투자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CBDC 실험이 멈춘 가운데 은행권은 즉각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미 컨소시엄을 구성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 중이며, 빠르면 올해 하반기 시범 발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테이블코인은 자산(원화, 달러 등)에 연동돼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디지털 화폐로, 기술적 민첩성과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 확장성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특히 은행권의 '원화 코인' 선점 경쟁도 치열하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3일 총 17개의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전자이체업, 금융거래업으로 출원했다. 같은 날 카카오뱅크도 총 4개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하나은행도 최근 스테이블코인 상표권 출원에 나서며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민간형 스테이블코인은 향후 은행권의 새로운 시장으로 보이며 속도를 내어 빨리 추진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실증 실험 관련해 빨리 합의해 디지털 원화를 선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행에서 추진하는 CDBC는 스테이블코인이 워낙 갑자기 화두가 되어 조금 추진이 늦어지는 느낌"이라며 "민간 주도의 혁신 모델로 새로운 수익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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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권에선 한국은행의 이번 CBDC 실험 중단으로 한국이 유럽식 혼합 모델 혹은 미국식 민간 중심 모델을 참고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팩트 DB |
세계 각국도 디지털 화폐 설계에서 중앙집중형 모델과 민간 참여형 모델 사이에서 다양한 전략을 모색 중이다.
중국은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e-CNY)를 직접 발행·관리하며 중앙집중형 CBDC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를 준비하면서 상업은행과 핀테크 기업 등 민간 주체와의 협력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설계 중이다. 이는 민간 혁신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 접근법이다.
미국은 공식적인 CBDC 도입은 미정이지만 USDC·USDT 등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글로벌 결제와 자산 관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러한 민간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보완하며 '민간-공공 공존' 모델을 준비 중이다.
금융권에선 한국은행의 이번 CBDC 실험 중단으로 한국이 유럽식 혼합 모델 혹은 미국식 민간 중심 모델을 참고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한은의 통화 정책과 금융 안정성 유지라는 목표는 유지하면서 시장 혁신은 민간에 맡기는 병행 전략으로의 전환이 거론된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경쟁 구도는 소비자 편익 확대와 금융 혁신 측면에서 기회가 될 수 있으나 동시에 규제 리스크와 시스템 안정성 문제를 수반한다. CBDC는 국가 보증의 절대적 신뢰를 제공하지만, 실험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민간 주도 모델에 비해 대응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빠른 혁신과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나, 발행 주체의 신뢰와 담보 체계에 따라 소비자 피해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한은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리스크로 △ 코인런(대규모 인출 사태) △ 외환시장 불안 △ 통화정책 제약 등을 언급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 발표 예정인 디지털 금융 혁신 로드맵을 통해 CBDC 재개 여부와 스테이블코인 정책을 포함한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중단으로 한은의 전략은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며 "디지털 원화를 둘러싼 공공과 민간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 시험을 넘어, 한국 금융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