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전기차의 섬'이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전기차 보급률을 자랑한다.
도내에서 운행 중인 차량 10% 이상이 전기차이며, 전기차 대수 대비 충전기 설치율 또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주는 한국 전기차 보급의 살아있는 실증장이자 미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같은 양적 성장 뒤에는 불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최근 일부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생산을 중단하거나 감산하고, 내수 판매 부진이 심화하며 전기차 '캐즘(Chasm)'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장 둔화는 단순히 판매 부진을 넘어 국가적 친환경 정책목표 달성을 지연시키고, 지속 가능한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제주를 기반으로 현재 한국 전기차 충전의 현실태 진단과 함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불안정한 충전 인프라가 전기차 보급과 친환경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중 조명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 앱은 '사용 가능'…가보니 '또 고장'
전기차 충전기와 충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앱)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으나, 현장에 도착해보면 다른 차가 충전 중이거나 아예 고장 난 경우를 전기차 운전자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국내에서 운행되는 전기차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보급 정책 덕분에 빠르게 늘었지만, 불안정한 충전 인프라는 운전자들에게 큰 불편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충전기들의 잦은 고장과 낮은 가동률은 불만을 증폭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최근 제주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부 공공 급속충전기 누적 고장률은 17%를 훌쩍 넘긴다.
이는 충전기 6대 중 1대꼴로 문제가 발생하는 셈이다.
운전자 커뮤니티에는 '충전 시작했다가 갑자기 멈춰서 진땀 뺐다', '결제 오류 때문에 몇 번이나 시도했는지 모른다' 등 불만 섞인 글이 끊이지 않는다.
밥 먹듯 '먹통'이 되는 충전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언제 차량이 멈춰 설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충전 유목민이 돼가고 있다.
고장 발생 시 신속한 수리가 이뤄지지 않고 장기간 방치되는 것도 공공기관의 경직된 운영 방식과 예산 부족에서 오는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제주도 관계자는 "충전기 발생 요금만으로는 사실상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제주도 운영 충전기 대부분이 노후화돼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충전기 모델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제조사 모델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모델별 부속을 전부 갖추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 3월까지 중국산 한 부품이 계속 고장 났는데, 제조사가 제주만 납품하는 게 아니고 전국적으로 하다 보니 부품을 발주하고 도착하기까지 2~3개월이 걸리는 상황이다"며 부품 수급난이 수리 지연을 초래하고 있음을 실토했다.
이는 공공 충전 인프라가 단순히 양적 확충을 넘어 운영 주체의 재정적·기술적 한계, 그리고 복잡한 장비 관리 문제에 봉착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구나 전기차 사용자들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부분은 공공기관 충전 요금이 민간 사업자의 할인 요금보다 비싸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국민 세금으로 설치·운영되는 공공 인프라의 경우 민간시설에 비해 당연히 저렴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 기대치다.
그러나 시장 가격 기준점 형성 및 민간시장 위축 방지라는 명분 아래 공공 충전요금이 민간 업체의 '할인된' 회원 요금보다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23년 10월 제주 도내 한 언론 보도에서는 공공기관 완속충전기 요금이 민간시설 대비 1.5배 비싸 연간 20만원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비싼 요금에 심지어 고장도 잦은 공공 충전기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 사례에서 보듯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보급 확대라는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운전자들은 불편과 불안, 불만이 팽배한 '3불'의 상태에 빠져 있다.
호남취재본부 박창원 기자 capta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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